기득권층에게 FXXK을 날리는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시퀀스별로 완전히 파헤쳐 주마!


12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데이비드 린치의 2001년 작품으로, 나오미 왓츠와 로라 해링이 주연을 맡은 영화다. 영화는 마치 꿈을 꾸듯 꿈결을 따라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로이 유영한다. 몽환적인 서사와 은유로 제54회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작품. 나는 이를 ‘할리우드에 대한 혹은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상징화한 몽환’ 정도로 해석했다(멀홀랜드는 할리우드에 있는 실제 도로명이기도 하다). 분석은 서사가 진행되는 시간순이다.

 

오프닝 시퀀스는 저마다 짝을 지어 춤을 추는 커플들 가운데 베티(나오미 왓츠)가 유달리 화사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곳은 그녀가 꿈꾸는 할리우드다. 그녀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등장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이는 베티의 욕망을 보여 주며 향후 벌어질 모든 사건의 배경을 암시한다. 한편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인 리타(로라 해링)는 한껏 차려입은 채 승합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던 중 모종의 음모론에 휩싸이게 된다. 홀로 살아남게 된 리타.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억을 상실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고 있는 몽환적 분위기와 더불어 영화는 꿈결 같은 대사들을 선보이는데 이는 우리 현실과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꾸는 꿈의 형상과도 비근한 것이다. 꿈은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일견 난삽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공통된 속성이 있고 기호가 있는데, 그 기호는 반복되며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과 결탁한다. 그러한 현상은 인물들의 관계를 현실과 다르게 재정립시키곤 한다. 가령 내가 모르는 걸 상대방은 이미 알고 있고 그렇다는 사실 자체도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았음에도 이미 내가 알고 있다.

 

7

 

영화 속에서도 시간과 장소, 서사가 꾸준히 반복되는데 일례로 ‘윙키스’ 시퀀스를 꼽을 수 있다. 윙키스라는 식당에 남자 둘이 마주 앉아 있다. 그중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 건 댄(패트릭 피슬러)인데,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자신이 꿨던 꿈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서사 자체가 꿈의 성질과 형태로 기능하고 그 꿈에 등장하는 인물이 꿈속의 꿈을 확인하고자 하는 셈이다.

 

댄은 인물들이 상호적으로 욕망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과정 속에서 ‘어디서 많이 본 자’로 기능한다. 말하자면 기시감의 기능인 것이다. 훗날 같은 장소에서 베티가 살인을 청부할 때 댄은 계산대 옆에 서 있다. 댄이 앞에 앉은 남자에게 ‘내 꿈속에선 네가 저기 계산대 옆에 서 있었어.’라고 대사를 한 후, 본인이 계산대 옆에 서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영화 중, 후반부에 등장하는 미친 할망구 혹은 ‘할리우드 여배우의 슬픈 영혼’ 정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루이스(리 그랜트)와 더불어 상징적인 은유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베티는 스타 여배우를 꿈꾸며 꿈의 무대인 할리우드로 날아오게 된다. 그녀는 잠시 머물게 될 이모의 집에서 교통사고를(앞서 휘말린 음모론) 당한 후 숨어든 리타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리타는 진짜 이름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자 방 벽에 붙어 있던 영화 포스터를 보고 리타라고 둘러댄 거뿐이다. 방에는 찰스 비더 감독의 1946년 작 ‘길다’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다급히 찾은 이름은 주연 ‘리타 헤이워스’의 리타였다. 실제로 리타 헤이워스가 맡은 길다라는 배역은 연정을 통해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역할이라고 한다.

 

그녀는 옛 애인과 재회하고 서로에게 이끌려 남편을 배신하나 결국 그 둘의 애정에도 문제가 생겨 순탄치 못한 생활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복수를 하러 남편이 돌아오게 되면서 셋의 관계는 더욱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길다는 질투와 증오로 얼룩진 치정 관계를 한데 잇고 있는 인물이며, 리타도 베티와의 관계에서 가지게 될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리타 헤이워스는 실제 삶에서도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고 한다. 두 번째 결혼 상대는 오손 웰스, 세 번째 결혼 상대는 알리 칸 왕자로, 결혼 후 왕족이 되었다고 한다.

 

6

 

곧이어 ‘입맛 까다로운’ 할리우드 권력자들이 등장한다. 모든 영화사 임원진은 온갖 아첨을 동원하여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애쓴다. 그들은 거대 권력자들로,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우위의 계층을 드러낸다. 그들이 내보이는 방식은 특정 여배우를 지목한 뒤 이견을 묵살하는 방식이다. 감독을 종속된 자, 예속된 존재로 격하시키려 드는 것이다. 커피가 바로 그 상징인데, 표현 그대로 ‘입맛 까다로운’ 모습을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임원진은 이탈리아에서 엄선해 온 커피라고 소개하지만 한입 물더니 곧바로 내뱉어 버린다.

 

입맛 까다로운 권력자들의 연결 고리는 곧 ‘모든 걸 지켜보는 자’가 있는 드높은 자리와 연결된다. 결국 입맛 까다로운 그들마저 누군가의 수하가 되는 셈이다. 거대 권력 중의 권력, 절대 권력 앞에 그들은 머리를 조아린다. 그는 세상 모든 걸 좌우하고 있다. 모든 걸 좌우할 수 있는 힘은 존재의 힘이다. 법의 힘을 초월하는 존재의 힘이다. 가진 자 위에 가진 자, 그 위에 가진 자의 논리로 성립되는 할리우드의 본질적 속성을 통해 보여 주는 건 종국적으로 자본 권력의 상하라 할 수 있다. 퍼센티지의 게임, 그 게임의 첨탑인 피라미드를 통해 ‘약육강식의 세계’, ‘먹이 사슬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살인 청부업자가 등장한다. 그는 지속적으로 목표물 제거에 실패한다. 이 업자는 결말 부근에 베티가 질투심에(리타와 감독에 대한) 의해 살인을 청부하게 되는 그 업자다. 리타는 베티에게 기억 상실을 고백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고백한다. 베티는 그런 그녀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고 도움을 베푼다. 그들은 지갑에 든 의문의 돈다발을 발견한 뒤 자아를 찾는 여정을 떠나게 된다.

 

제멋대로 힘을 휘두르는 권력자들에 화가 난 감독은 짜증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내가 바람났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거대 권력자와 기득권층이 가진 초월적인 힘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이 나약한 감독은 가난한 서민이 아니다. 오히려 기득권층에 가깝다. 이는 ‘중간치 기득권’이 가지고 있는 일상적 불안을 통해 감히 ‘절대 권력’에 범접할 수 없는 현실, 좌절과 괴리감, 상대적 박탈감을 보여 주는 동시에 가지고 난 후의 ‘가진 것들에 대한 불안’을 가중하여 보여 주는 것이다.

 

그건 바람난 아내를 피해 숨어든 모텔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파산했다는 소식을 일방적으로 듣게 된다. 더 가진 자 앞에서 나약하게 나뒹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그는 절대 권력이 보낸 카우보이를 만나 신념을 버리고 굴종한다. 감독은 오디션 장에서 카우보이가 일러 준 대로 특정 여배우를 향해 ‘바로 저 여자야.’라고 외치게 된다.

 

5

 

베티와 리타는 윙키스에 들른다. 리타는 종업원이 찬 명찰에 적힌 이름 다이안을 발견하고, 혹시 자신의 이름이 다이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종업원의 이름표는 훗날 베티가 현실 세계로 돌아와 살인을 청부하게 될 때 윙키스 종업원의 이름표에 베티라고 적힌 것과 동일한(혹은 유사한) 반복의 과정으로, 일순간 자신을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의 순간으로 기능하며 상징적 질서의 체계를 현실보다 꿈에 더 가깝도록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베티는 리타를 돕는 한편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이 시퀀스는 금발의 여배우를 보는 할리우드의 시선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녀에게 성적인 연기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베티가 원해서 한 일이지만 이는 결국 그녀가 가진 성공과 성취, 부와 명예에 대한 환상이 빚어낸 대가성의 욕망인 것이다. 그녀의 욕망과 할리우드의 욕망은 근원적으로 대치되는 부분이 있다. 비록 같은 대가성일지라도 할리우드는 금발 여배우를 히로인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창녀로 본다. 성공하기 위해 몸을 파는 난관, 그 대가성에는 일개 여배우가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그녀들은 오디션을 끝내고 나와 ‘뒷담화’를 주고받는다. 돈과 일에 얽히고설킨, 가식적이고 피상적인 관계의 표상인 것이다.

 

리타는 베티와 함께 정체성을 찾던 중 엄청난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애써 찾아낸 다이안의 집에서 죽은 흑발의 여자를 보게 된 것이다.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혹시 자신의 자아일 수도 있는’ 모습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죽은 자의 모습, 흑발에 대한 공포심은 금발의 가발을 쓰게 되는 일면적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지극히 표면적인 탈피를 통해 자아의 탈바꿈을 연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리타와 베티는 함께 잠자리에 들게 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키스와 애무를 나누게 된다.

 

3

 

사랑에 빠진 그녀들은 꿈에서 꿈을 꾸듯 역시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마법의 극장 실렌시오로 떠나게 된다. 극장의 공연에는 ‘오케스트라는 없다.’, ‘모든 게 환상이고 녹음된 것이다.’라는 주석이 달린다. 공연을 보던 베티는 공포에 떨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극장에서 연출한 포악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는 없다.’ 그리고 ‘모든 게 환상이고 녹음된 것이다.’라고 하는 할리우드의 가식과 권위, 허위의 공포에 짓눌려 몸을 떨게 되는 것이다.

 

공연의 마지막 장에서 여배우의 슬픔을 알리는 ‘슬픈 여인’이 나와 노래를 부르게 되고, 베티와 리타는 슬픔에 빠져(실제로는 베티와 리타 모두가 할리우드 여배우이기 때문에) 격정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눈물을 흘리고 나니 정체성에 대한 단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방을 열어 네모 상자를 발견하는 것인데, 이 역시 고된 행위로써의 탐구 과정이 아니라 아무도 일러 주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발견해 낸 것이다.

 

(사실 실렌시오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클럽 실렌시오에 대한 오마주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영화감독 외에 화가, 가구 제작자 등의 많은 일을 하는 데이비드 린치는 프랑스 파리에서 ‘실렌시오’라는 이름의 클럽을 디자인했다).

 

그녀들은 집으로 돌아와 네모 상자에 열쇠를 넣고 돌린다. 정체성을 찾는 단서, 현실 세계로의 귀환을 알리는 것이다. 영화는 꿈을 벗어나 꿈만 같은, 그러나 엄연한 현실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한다. 베티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베티는 리타를 중간 권력자에게 빼앗기게 된다. 그는 바로 자신의 꿈속에서 거대 권력에 굴종했던 감독이다. 리타가 양성애로 표현됐을 뿐 연인들 사이를 오가는 영화 ‘길다’의 리타와 동일한(혹은 유사한) 정체성으로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다.

 

베티는 질투와 증오심에 불타오르다 결국 살인을 청부하게 된다. 장소는 다름 아닌 윙키스. 이때 종업원의 명찰에서 베티라는 이름을 확인하게 된다. 청부업자는 그녀에게 열쇠를 건네준다. 열쇠는 꿈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꿈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를 나타낸다. 그 후 베티는 실로 무시무시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는 일종의 ‘잃고 난 후의 불안’인 셈이다. 앞서 윙키스의 댄이 자신이 꿨던 꿈을 꿈속에서 확인하고자 했을 때 등장한 ‘담벼락의 검은 걸인’은 그녀 앞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 검은 걸인은 결국 그녀가 평상시 가지고 있던 공포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도입부에서 밝혔듯 오프닝 시퀀스는 베티의 혹은 베티가 꿈꾸는 할리우드다. 반면 클로징 시퀀스는 베티와 리타 모두의 할리우드다. 부분에서 전체로 확장된 것이다. 누구도 자본의 상하로부터, 권력의 압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휘황찬란하게 밤거리를 수놓던 그녀들의 잔상은 다시 실렌시오로 되돌아간다. 파란 불빛과 연기 속에 휩싸이던 실렌시오. 어느새 불빛과 연기는 사라지고 그녀들의 길고 긴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한 편의 연극처럼 조용히 막을 내린다.

0 Comments

댓글 남기기

You may also like

Choose A Format
Personality quiz
Series of questions that intends to reveal something about the personality
Trivia quiz
Series of questions with right and wrong answers that intends to check knowledge
Poll
Voting to make decisions or determine opinions
Story
Formatted Text with Embeds and Visuals
List
The Classic Internet Listicles
Countdown
The Classic Internet Countdowns
Open List
Submit your own item and vote up for the best submission
Ranked List
Upvote or downvote to decide the best list item
Meme
Upload your own images to make custom memes
Video
Youtube, Vimeo or Vine Embeds
Audio
Soundcloud or Mixcloud Embeds
Image
Photo or GIF
Gif
GIF form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