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의 호기심] 90년대생들이 열광했던 만화들이 담고있던 심오한 테마

선가드, 다간, K-캅스가 "인간과 비인간의 교감"을 주제로 한 하나의 시리즈물이었다니.


다간, 선가드, 케이캅스. 1990년대생이라면 친숙할 이 작품들을 우연히 회고했다. 그러다가 이 작품들이 “인간과 비인간의 교감” 이라는 매우 복잡한 주제를 공통적으로 담은 하나의 시리즈였다는 신기한 사실을 깨달았다.

시리즈물소개1.png

장난감1.png
다간과 카옹 장난감_코묻은돈.jpg

 

알고 보니, 이 만화들은 “자아를 가진 로봇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일본의 프로덕션사 선라이즈사(社) 와 장난감 제작사(돈은 장난감으로 벌었다고 한다) 타카라사(社)가 제작한 <용자 시리즈>였다고 한다. 일본 제목은 <지구의 용자>, <태양의 용자>, <용자 경찰>. 몇 가지의 고정 패턴이 서로 공유되는데, 주인공이 빨간 자켓을 입는것, 클라이막스에서 격렬한 전투로 주역 로봇의 페이스가드가 깨지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입이 드러나는 것은 용자 시리즈의 특색이다.

주인공빨간옷1.png
빨간 자켓을 입은 주인공들
입마스크1.png
입 마스크 파손 전
입마스크2.png
마스크가 파손되며 드러나는 사람을 닮은 입모양

 

다간

어렸을 때는 다간 로봇 경찰차가 희한하게 생겼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람보르기니 디아블로였다 ㅎㄷㄷ. 이로 인해, 초등학교 5학년짜리 주인공이 졸지에 개이득을 보며 당대 최고 부자였던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차를 타고 다니게 된다.

다간경찰차1.jpg
다간 경찰차
다간경찰차5_도널드트럼프가 파는 차.jpg
트럼프 대통령 애마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다간경찰차4.jpg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다간은 용자 시리즈 중 한국 첫 방영작이다. 행성 에너지를 흡수하며 세력을 키우는 외계군단에 위험을 느낀 지구가 착한 어린이를 골라, 지구 수비대의 대장으로 위임한다. 생명을 부여한 기계들의 통솔권을 주어 적 세력에 맞서게 하는 내용. 지구가 스스로 의사(意思)를 가졌다는 설정이 심오하다. 돌아보면, 단지 적과 싸워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나 역사 의식 고취 등 다양한 부분에서 곱씹어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 같다.

선가드

선가드1.jpg
선가드

우주황제 드라이어스의 야망을 막기 위해서 지구로 온 외계인 한불새는, 박사가 제작한 안드로이드와 융합하게 된다. 평소에는 인간 모습을 하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로봇이 되는 외계인 한불새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특이한 점은, 어린 시절 놓쳤던 최종 보스 우주황제 드라이어스의 리더십과 프로페셔널리즘.

평소에는 엄격하지만 지고 있던 부하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주거나, 착한놈에게 밀리던 부하들에게 ‘한심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츤츤거리며 직접 나서 도와준다. 부하들이 초반에 선가드에게 패배하고 드라이어스에게 용서를 구하자 ‘어쨌거나 이번 일로 그놈들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라면서 부하들을 치하한다. 그 이후에도 부하들이 줄기차게 선가드에게 패배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책임을 묻거나 질책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차분하게 다음 작전을 준비하자고 독려했다. 다른 최종 보스들이 자주 패배한다는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 것과는 달리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부하들은 이러한 드라이어스의 모습을 존경하고 따르며 다른 작품의 악역들과는 달리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하다. 드라이어스가 선가드의 공격에 위험에 처했을 때 부하들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방패가 되어 준 것도 이런 신뢰관계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패가 된 직후, 드라이어스에게 퇴각을 진언하고 드라이어스도 이를 수용하는 등, 야비하게 서로 눈탱이 치는걸 서슴지 않는 다른 작품의 악역들과 달리 이들은 이상적인 군신관계를 보여준다.

(위험에 처한 보스몹을 위해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악당 부하들)

또한 인간 동업자인 악당 박사가 자신을 배신할 꿍꿍이를 품었던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로만 끝내어 박사를 용서하고 지속적인 동업 관계를 유지하는 프로페셔널. 악당 박사가 단독 행동을 하거나 위기에 빠질 때마다 부하들에게 ‘박사란 녀석이 또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필요한 일이 있으면 너희들이 가서 도와줘라’라고 지시했다. 뒤에서 옴므파탈 오지는 클라스..

결국 박사도 드라이어스를 배신할 꿍꿍이를 버리고 이후로도 쭉 동업자로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마지막까지 험악하지 않은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동업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21세기형 프로페셔널 리더의 진면목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싸움. 앞서 언급했듯 싸움의 절정 부분에서 페이셜 가드가 깨지고 사람 같은 입이 나온다)

 

K-캅스

경찰물. 초월적이고 강력한 적 세력과의 대결이 아니라, 공무원 로봇들의 일상적인 투쟁을 그리고 있다. 평범한 소년인 주인공은 어느날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경찰 로봇 데커드와 만나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데커드의 인공지능은 의지와 감정을 가진 초 인공지능으로 진화하게 된다.

참고로 다간과 마찬가지로 데커드 역시 돌아 생각해보면 슈퍼카였다. 쉐보레 콜벳이었던듯.

케이캅스경찰차1.jpg
K-캅스 경찰차

 

케이캅스경찰차3.png
쉐보레 콜벳
케이캅스경찰차2.jpg
쉐보레 콜벳

데커드는 로봇 공무원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엄청나게 고생했던걸로 기억한다. 특히 악당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결박 당한 상태에서 고문을 많이 당했는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부숴지는 몸체에서 석유가 피처럼 흘렀다;;; 어른들이 애들 상대로 만든 만화에 그런 SM적 요소를 도대체 왜 넣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게 된다.

데커드 고문 1.jpg
끔찍히 당한 데커드(주인공 로봇)
데커드 고문 2.jpg
끔찍히 당한 제이데커드(주인공 로봇)

돌아보면 이 만화에는 자본주의 사회 모습을 투영한 설정이 많았는데, 부패 기업과 정부의 전면전, 드릴보이/ 쉐도우 등 새롭게 등장하는 로봇 멤버들이 각자의 개성 때문에 기존 로봇 멤버들에게 오해와 미움을 사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들이 그러했다.

드릴보이1.jpg
잘난척하는 천방지축 성격이었던 드릴보이(좌)

“사람과 교감하는 로봇,” 그리고 자아와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초 AI)을 대주제로 당대 어린이들을 풍미했던 이 작품들의 탄생지는 일본. 사람을 대면하는것에 대한 부담이 일찍이 만연하여, 히키코모리 생활패턴, 섹스토이와의 결혼과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바로 그 일본에서, 믿을 수 있는 로봇 친구를 주제로 한 시리즈를 이미 25년 전에 창작한건 우연의 일치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만화에 등장하는 “나를 지켜주는 위력자”들은, 수십년 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에 등장하는 섹시한 천재 AI 비서 사만다(스칼렛요한슨 役)처럼, 자아(ego)를 가진 비인간(non-human)들에 대한 이상형을 한 세대 빨리 그려낸 작품들이 아니었을까?

 

인공지능AI.png

 

0 Comments

댓글 남기기

You may also like